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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의교회

나눔의 교회 - 주사랑 찬양대

신당 3동의 영화

이송자 2003.06.21 00:12 조회 수 : 1375

즐비한 판잣집 사이로 미로 같은 길들이 무성한 나무 가지 치듯이 여기 저기 뚫려 있는 곳에서 길을 잃을까 걱정했던 적이 있다. 비 오는 날 좁은 길에서 마주오는 사람의 우산이 부딪힐까봐 상대방을 낯설워 하며 지나갈때 까지 기다려야 했던 적이 있다. 위로위로 뻗어 있는 계단 앞에서 어느새 저만치 날아가 앉아있는 새를 부러워하며 끝없이 펼쳐진 구불구불한 계단을 현기증으로 바라보았던 적이 있다. 아마 그 계단끝은 땅과 하늘의 중간쯤은 됐으리라. 기상청에서 태풍을 예보하면 혹시 3동 그 꼭대기 집이 바람에 날아가 버리지 않을까 조바심이 났던 적이 있다. 가끔 바람이 불고 도둑 고양이가 음산한 울음소리를 내는 밤이면 아마 이 곳이 유령촌이 아닐까 하는 폐허감마저 느꼈던적이 있다 세상의 어둡고 습한 색깔들이 다 모였고 성공을 꿈꾸며 또는 무엇인가의 울분으로 상경한 사람들의 보금자리로서, 자신의 노동의 결과물로부터 소외당하는 사람들의 보금자리로서 그 허술한 살림살이 면에서나 위생면에서나 달동네 재개발 촌 답게 어느것 하나 기대에 벗어나지 않았다. 집 한채에 같은 주소를 가진 몇가구가 살았고 그러니 화장실은 당연 공중 화장실이 되었고 물세 전깃세 계산하는 자리에선 모두가 입이 댓발이나 나와 한번쯤 큰 소리가 나와야 그 달 공과금 분담이 끝나는 것이다. 연탄 몇장에 울고 라면 1-2개로 싸우는 사람들.질그릇 깨지는 소리로 살았던 사람들 그들에게 신당 3동의 달동네는 이사오면서부터 벗어나기를 꿈꾸는 가난의 이름표였을 것이다. 아이들이 있다 햇볕이 쨍쨍 내리 쬐는 골목길에서 살오른 태양을 비웃으며 더위와 함께 뒹그는, 한겨울 동장군도 물러서게 하는, 천진한 웃음소리와 고함소리에 골목길 생쥐도 놀라 도망하게 하는, 영세한 가게방 앞에서 세상걱정없이 아이스크림을 핥아먹는 , 딱지치기와 팽이치기에 여념이 없는 , 음지에서 양지로 뻗어나가는 아이들이말이다. 내가 남편과 했던 구멍가게 만한 속셈학워은 이 아이들이 주된 고객이었다 . 부모가 해야 하는 힘든 노동을 되물림하고 싶지 않아서 일까? 아이들에 댜한 교육열은 돈없다고 처지는 만큼도 아니었고 가진 사람들 만큼 가르치지 못했어도 평균적으로 가르쳐야하는 만큼은 교육열을 내고 있었다. 가끔 삶은 밤을 가져와 까먹기도 했고 현장학습 가는 날이면 내몫의 김밥 까지 챙겨와 학원에 던져주고 가는 아이들도 있었다. 방학식 하는 날이면 떡볶이 파티를 열었다. 시간이 나면 먹을 것을 싸가지고 남산에 올라가 긴 여름해를 즐겼고 아이들은 특유의 순수함과 천진함도 나에게 나누어 주었다 출판사에서 책을 가져다 보라고 여러번 권했지만난 굳이 언제 쓰러질지 모르는 건물에 문방구를 내고 있는 은혜아버지에게 부탁해 소매 가격으로 책을 구입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책값의 20%의 이윤을 고스란히 은혜 아버지에게 돌렸다. 내가 책 장사가 아닌 이상... 그것을 고맙게 여긴 문방구에서 연필과 지우개가 한다발로 도착해 선행을 한 아이에게 나누어 주었다. 부모가 바쁜 만큼 씻는 것에 일부 아이들은 게으름을 피웠다. "안녕히 계세요"하고 나가는 녀석에게 "팔하고 목씻고 와 안그러면 내일 혼내줄거야." 이것이 나의 대답이었다. 정부가 나와 아이들과의 관계를 시샘했나보다 . 더디게 추진하던 재개발을 서두르기 시작했다 재개발 사무실은 분주해졌고 사람들은 불안해 지기 시작했다. 나 역시 불안해졌다 아이들이 떠난다면 우리 학원은? 이미 남편은 공부를 시작했고 남편으로부터 어떤 결과물이 나올때까지 우리 가정의 식생활 해결방안은 학원이었던 것이다. 1년 전에 재개발을 대비해 이 지역 아닌 다른 지역에서 아이들을 오게 해야 한다며 차량구입을 하자는 시누이의 제안을 난 거절했었다. 그리고 저축했던 돈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분양 받는데 다 쏟아 부은 뒤였다. 일찍부터 이곳에 땅을 사두었던 사람들은 기다린 보람이 현실로 나타나 좋아했고 그나마 임대 아파트 분양권에서 멀어진 사람들은 아예 어디론가로 삶의 터전을 옮겨야만 했다.그 동안 부지런히 모아 전세 값이나 모은 사람들은 서둘러 빠져나갔고 비어있는 집들을 보며 떠날 채비를 하지 못한 이들은 밤잠을 설치며 살아갈 날을 궁리했을 것이다. 떠나는 사람들이나 남아있는 시장의 상인들이나 시장쪽에 있었던 우리와 같은 학원업계의 사람들은 잃어버린 소비층에 대한 대체 방안을 강구해야만 했다. "이렇게 타격이 크게 올 줄이야' 사람들이 본격적으로 떠나면서 내 삶의 터전에도 아이들이 줄기 시작했다. "우리 다음주에 이사가요" "우리는 다음달에 이사가는데... 아파트 지어지면 다시 온데요." 이런말을 들은 날은 나도 밤잠을 설쳤다. 설상가상으로 터진 IMF은 이들의 날개에 더할수없는 상처를 주었다. 교육비 밀리는 아이들이 많아졌고 파산은 있는 집들이나 하는 것인줄 알았더니 파산할 것도 없는 그들이 파산했고 내가 아는 몇명의 아이들이 불행해졌다는 소문을 들었다. 한달에 많게는 12명의 아이들이 빠져 나갔다. 인력으로 안되는 손을 쓸 수 없는 거대한 힘(재개발과IMF)에 난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가고 있었다. 학원에 한남자가 찾아왔다 보험회사에 다녔던 아이 엄마가 생활고를 비탄해 가출했다는 것이다. 밀린 교육비를 탕감해 달라는 얘기다. 막노동판의 일손도 끊겨 두아이 데리고 살아갈 날이 막막하며 있는 집도 비워야 한다며 울음을 토해냈다. 40대 중반의 남자가 20대 후반의 나이어린 여자 앞에서 어깨를 들썩이며 울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의 위로가 나에게도 필요했지만 눈앞에 있는 저 연약한 존재보다 훨씬 나은 처지리라 그 남자 역시 교육비를 낼 능력이 없었고 나 역시 교육비를 받아낼 의지를 상실했다. "나 그만 둘거야. 흔적도 없애버릴거야. 보름안에 학원 정리 할거야." 그 뒤로 난 일년을 더 버텼고 포크레인과 불도저가 서울 한복판에 이런 달동네가 있었다는 것이 부끄럽다는 듯 시끄러운 소리로 흔적을 지워가며 땅을 깍아내고 다졌다.생활의 타개책도 없이 내몰려야 했던 사람들 불행해진 아이들... 지금쯤은 그들의 상처도 다져졌겠지.. 시장을 분주히 오가던 그들의 모습과 지금은 철이 들었을 아이들의 얼굴이 구시대의 유물처럼 생각할 수록 향수를 자아내게 한다.시대에 걸맞게 장소에 걸맞게 잘 지어진 직사각형의 구조물을 바라보노라면 그때의 상실의 추억이 가슴을 시리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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