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나눔의교회

나눔의 교회 - 은혜와 간증

만남의 복(福) [좋은 신문 10월호 中]

곽충환목사 2005.10.03 07:57 조회 수 : 4497

                        [만남의 복(福)]


   1990년 가을 녘.
   제 목회 인생을 바꾸어 놓은 특별한 만남이 있었습니다.
당시 고등학교 교목으로 있던 저에게 한 부부가 찾아 왔습니다.
교목으로 섬긴지 7년이 지날 무렵입니다.
   알토란 같은 30대의 목회 인생 첫 마디를 학생들과 보내고 나서
두 번째 마디는 유학으로 시작하고 싶었습니다. 
꼭 2년만 공부하고 오겠다며 유학 서류를 준비하고 있던 중,
교육전도사 시절 만났던 집사님 부부가 저를 찾아 온 것입니다.

   요지인즉슨 '예수 믿는 일생에 꼭 한 번 교회 개척을 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그동안 준비시켜 주셨으며, 그 시작을 곽목사님과 함께
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일로 기도해 본적이 없었습니다.
여전히 교회 개척은 제 몫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대답하기 제일 좋은 말은 '기도해보자'는 회피성 멘트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대로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그 집사님 부부를 두 번째 만났을 때, 저는 그 분들의 말대로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번에 한 번 제 말을 들어 주시면 평생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겠다"는 집사님의 진실한 고백을 듣는 순간 - 그 말 때문이 아니라-
평신도 부부는 저리도 절절히 모든 것 드려 주님 위해 살려고 하는데,
목회자인 나는 그에 비하면 너무 사치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듬해, 다산로 길의 은행잎이 고운 자태로 옷을 갈아입던 
종교 개혁 주일에 나눔의 교회는 그렇게 창립되었습니다.
신방을 꾸미듯 가슴 설레며 준비할 무렵 하나님은 두 가정을 더 보내
주셨습니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다는데,
교회 하나가 서기 위해 십수년 흘린 눈물은 또 얼마나 많았으랴.
   교회 시작부터 집사님 부부는 지극 정성으로 섬겼습니다.
성전에 떨어진 티끌은 금싸라기였고, 허리 굽은 할머니 한 분도 공주님
이었습니다.
   교회 문을 열어 놓으면 도난 사고가 잇따르고, 닫아 놓으면 무슨 
애꿎은 마음인가, 지하 예배당 철문 앞에 대소변이며...그를 치운 날이
한 두번이런가.
   개척 교회엔 목사님 찾아오는 사람도 많아, 허구한 날 고향 길에 차비
없는 사람은 왜 그리 많은 거며, 금방 교도소에서 나온 사람은 왜 또 
여기만 오는건가.

   '나눔의 교회'가 나누지 않고 뭐하느냐고 손 벌리면서도 오히려 큰 
소리에... 은혜 깡패는 숨어 들어와 이 교회엔 마귀가 있네 없네 하며
교회를 흔들 때. 두 팔 벌려 "우리 목사님 힘들게 하지 말라"고 모두
막아선 것도 그분들이었습니다.

   목사님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우리 교회는 큰일난다고 6개월에
한 번씩 정기 검진 받으시라. 휴가 잘 보내셔야 한다며 바리바리 
싸주던 정성을 잊을 수 없습니다.
   목사 생활비에, 없는 교인 입원비에, 장사치룰 묘지까지. 
남모르게 펼쳤던 눈물의 섬김.
   그 후로 네온으로 불 밝힌 종탑위의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51살에 나눔의 교회를 개척으로 섬겼던 집사님 부부는 이제 나눔의
교회 장로님과 권사님이 되셨습니다. 그리고 14년 전에 목회 인생의 
방향을 틀었던 저도 금년에 51살이 되었습니다. 장로님이 나눔의 교회를
개척했던 그 나이에 저도 하나님이 지어주신 새성전에서 다시 개척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 건강한 바로 그 교회로 서기 위해!

   다산로길 은행나무가 탐스런 열매를 맺어 지나는 행인의 눈길을 끕니다.
노오란 단풍잎이 바람에 흔들려 햇빛에 반사될 때 정말 아름답습니다.
그 은행 잎 사이로 보이는 나눔의 교회 십자가탑이 온 동네와 세계를
비출 빛으로 점점 커 나갈 것입니다.
사랑하는 나눔의 식구들과, 그리고 이 지역의,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과 함께!
   이 모든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 뿐입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