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생명-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이철주
육신의 어머니가 떠났습니다. 올해로 여든두 해의 세월을 풍진 속에 살았습니다. 살 만큼 산 나이입니다. 근대사를 고스란히 살다, 한 시대를 마감하고 가슴에 서린 한도 아픔도 다 묻고 하늘길에 올랐습니다. 가던 날 새벽에는 잠깐 빗방울이 뿌렸습니다. 남은 자들을 아파하며 떠나는 사람이 하직 인사로 드리는 눈물이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늘을 향하는 걸음을 옮기는 순간에는 일하는 사람들의 수고를 안타까이 여겨 참으로 맑은 유월을 선물하였습니다. 바람도 선선하여 남은 자들이 흘리는 땀을 방울방울 닦아 주었습니다.
태어나서는 살지 못하니 버려야 한다고들 했습니다. 그 소리를 들은 부모는 그녀를 방치했지만 어머니는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났습니다. 전쟁 중에 떠돌이 삶을 살다 간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였습니다. 그 바람 같은 남자는 가녀린 그녀의 가슴에 뺄 수 없는 아픈 말뚝을 많이도 박았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이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어머니는 남편이 죽고 나서 속이 다 후련하다고 했습니다. 그런 중에도 여섯 남매를 낳았습니다. 큰아들은 약물로 정신지체가 되었고, 사정이 그러하니 비슷한 처지의 여자를 며느리로 삼아 평생을 안고 살았습니다. 어머니는 자신의 죄가 크시다면서 미욱한 며느리에게 평생 싫은 소리 한 마디도 않고, 보듬고 쓰다듬으며 안고 살았습니다. 기대했던 둘째는 누구나 앞날을 인정하는 소년이었지만 세상 풍파에 바람처럼 이리 불리고 저리 날리며 살아갑니다. 큰딸은 가족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했지만 지금도 고난의 길을 걷습니다. 너무 유순하고 우유부단한 남편을 만난 까닭입니다. 둘째딸은 참으로 잘 살았지만 어느 순간 이상한 종교에 빠진 남편이 이상한 삶을 살기 시작하자 삶 자체가 피곤해지고 괴로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어머니는 이 세 남자들을 죽기 전에는 물건짝이라는 이름으로 불렀습니다. 사람으로 대하기 민망하다는 말입니다. 막내딸만 그런 대로 타국에서 건실한 남자와 속 끓이지 않는 삶을 살아갑니다. 그녀에게 주변의 남자란 한결같이 가슴에 응어리가 된 못된 존재들이었습니다. 그런 남자들 때문에 어머니는 아파도 아픈 말을 못하고 속에 홧덩이를 키우며 동시에 병도 키웠습니다. 모든 것을 참았습니다. 참고 참았습니다. 암 덩어리가 속에 바위처럼 굳어가도 막내아들이 아파도 참아야 한다는 말에 가족들 걱정거리 되지 않으려 참았습니다. 신음소리는 마지막 날 몇 시간만 내었습니다. 더는 견딜 수 없던 고통이 자신의 육신을 갈기갈기 찢을 때에야 비로소 신음을 길게 토하고 혼수상태에 들어가고 숨을 몰아쉬고는 세상이 준 고통을 쏟아내 듯, 몸속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붉은 암 덩이를 한 동이나 쏟고는 평안히 눈을 감았습니다. 숨을 거둔 지도 모를 만큼 조용히. 염을 마친 장의사는 시신의 얼굴이 이처럼 평온한 것은 처음 봤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자칭 불교도입니다. 실은 무속에 가깝습니다. 자식들은 그런 어머니께 끊임없이 예수를 전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때마다 매몰차게 거부했습니다. 이유는 죽어서 자신의 어머니를 만나기 위해서 예수를 믿으면 안 되고, 자신이 평생을 지켜온 것을 버릴 수 없다는 까닭이었습니다. 석 달 정도의 투병 기간에 어머니는 세 차례나 목사님들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첫 번째는 둘째딸 교회에서 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픈 중에도 그들을 강하게 내쳐서 그들은 방에도 들어오지 못 하였습니다. 두 번째는 먼데서 마지막 인사하러 온 막내딸이 친척과 함께 모시고 온 동네 목사님이었지만 딸 체면 때문에 형식적으로 듣고 영접기도는 하지 않았습니다. 막내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거의 포기하였습니다. 작년에도 토요일 밤에 같이 누워서 열심히 기도를 따라 시키고 아멘도 하고 주일날 약속대로 예배는 참석했지만 10분만에 머리 아프다며 나와버렸습니다. 예수로는 가망이 없는 노인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생명을 아끼사 기적을 준비하셨습니다. 막내아들은 이제는 마지막이다 하는 심정으로 목사님께 영접기도를 청했습니다. 목사님 한 분만 가시면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목사님 4분과 전도사님 사모님이 그 먼 밤길을 함께 하였습니다. 저녁 열 시쯤 도착하여 늦은 저녁을 먹고 열 시 반쯤 영접 기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눈을 감고 꼿꼿이 앉은 어머니는 목사님의 물음에 자신의 삶을 두 마디로 정리하였습니다. 난 절개를 지켜야 하니 안 된다, 난 가난으로 지은 죄가 많아 안 된다. 그래도 기도는 다 따라 하시고 아멘도 잘하시고, 그리고 내친 김에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그 시간이 단 30분입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손이 그 머리에 함께 하심을 압니다. 후에 목사님들은 이 일 자체가 기적이라고 하였습니다. 막내는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리고 오는 내내 한 숨도 자지 않았습니다. 감동이 메아리 쳐서
그런데 하나님은 불안한 아들을 위하여 기적을 확인시키셨습니다. 영면하시기 3주 전 주일 아침 7시15분경에 어머니는 숨을 완전히 거두었습니다. 신체적으로는 이미 가망이 없어서 전날 모든 가족이 모여 임종을 했습니다. 울면서 마지막 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혼수상태에 들어갔다가 아침 그 시간에 완전히 숨이 멎고 모든 계기의 불이 꺼졌습니다. 아들은 가족들을 부르고 의사를 부르러 뛰어나갔습니다. 그리고 의사를 찾지 못하고 다시 돌아왔을 때 계기판에 다시 불이 들어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다 오후 다섯 시 반에 다시 깨어났습니다. 그리고 저녁 열한시 경에 큰딸과 막내아들이 지키고 있는데 긴 숨을 몰아쉬며 어머니는 눈을 떴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야들아, 나 인자 갈란다. 어디? 인도 갈란다. 왜? 예수님 만나러 간다. 그 말을 들은 두 자식은 너무 좋아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은 희미한 정신으로 야들아 고맙다, 고맙다, 이렇게 말씀하시고 돌아 누우셨습니다. 또 문병 온 이웃집 할머니의 손을 잡고는 내가 이렇게 귀한 사람인 줄을 몰랐다며 우셨답니다. 다음 주에 다시 찾아서 기도를 했느냐고 물었더니 했다 하시기에 뭐라 했냐 했더니 신경질을 내며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했지! 뭐라고 혀. 오 아멘 할렐루야
어머니는 가시면서 가족, 친척 간의 불화를 모두 풀게 하고 가셨습니다. 풀라고 말씀은 안 하셨지만 서로가 어머니 중심으로 모이다 보니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장례식을 통하여 자신은 죽었어도 사람들에게 살아 있는 예수를 알게 하셨습니다. 술꾼인 매형은 입관 예배와 발인 예배를 드리고는 나는 이렇게 멋있는 예배는 처음 봤다. 이전에는 설교가 하나도 귀에 안 들어왔는데 어제는 귀에 쏙쏙 들어오더라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들은 누나는 그러면 그 교회 나가면 되겠네 하였습니다. 조카는 할머니의 장례식을 보면서 자기도 이제 교회 다니겠다고 하였습니다. 3일 동안 모두 5번의 예배를 드렸는데 방해자 하나 없이 평화롭고 영적인 감미로움이 넘치는 분위기였습니다. 누나는 돌아오면서 정말 멋진 축제 한판 치르고 오는 것 같아 너무 기분이 좋다고 하였습니다. 축제 기간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한 영혼을 품으신 하나님으로 하여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하나님을 알고 그 짧은 시간 동안 하나님의 딸로, 예수의 신부로 치열하게 살다간 어머님께 감사하며 그곳에서 이제 즐거운 웃음을 지상에 보내시며 사시기를 소망합니다. 아멘

제목에 글쓴이가 없어 머뭇거리다
태풍 메아리가 지나간 다음날 점심시간,
바로 지금 이 글을 보았습니다.
"야들아, 고맙다 고맙다" 맑은소리 토해내시던 이인녀 성도님,
^*
담임목사님과 함께 그 역사적인 현장에 있었던 한 사람으로서
성도님이 드리신 고백의 기도, 영접의 기도,
그리고 아멘과 세례의식은 정말이지 ~ 그대로
은총의 샘이 터지던 곳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부름심을 받아
영원히 아름다운 곳에서 즐거운 웃음을 지상에 보내시며
가족들을 위해,
지상의 성도들을 위해
교통(koinonia)의 기도를 드리실 이인녀 성도님,
어머니, 이인녀 성도님의 하늘 여행길을
담담히 소개해주신 글쓴이에게
큰 위로와 소망과 감격이 함께하리라 믿습니다.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놀랍습니다.
주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